농업을 지켜야 할 책임은 누구에게까지 있는가
농업을 지키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들은 한 명일 수 없다. 동시에 농업을 지키는 데에 책임이 없는 이 또한 없다. 농부와 정부는 물론이고, 당신과 나도 농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등등 생명 위에 쌓아 올린 산업이란 그런 것이다. 어디에도 우리의 생이 빚을 지지 않은 곳이 없다. 이 빚은 지기는 쉽고 갚을 길은 알 수 없다. 그저 우린 매일매일 농업에 빚을 지고, 그만큼의 생을 연장할 뿐이다.
우리는 농업을 지키는 책임을 위탁했을 뿐
직접적으로 농업을 이끌어 가는 농부도 우리가 지켜야 하는 존재다. 나와 당신이 시간을 내 할 수 없는 일들을 그들이 한다. 그들이 없으면 농업은 유지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마땅한 값과 진심 어린 관심을 기울여 농부를 지키기로, 오래전에 약속했다. 그들은 그렇게 농업을 지키는 중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행보를 보면 정부는 과연 농업을 지키는 데에 관심이 있나 의문이 든다. 급격히 오르는 물가를 잡기만 하면 장땡이라는 식으로 외국산 농산물 수입을 무자비하게 늘려 농부의 농사 의지를 꺾고 있다. 고물가가 이유라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도 정부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래된 약속이 중간에 끊겼다.
농업을 외면하는 행동
지난 5월 30일 정부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돼지고기, 생강, 고등어 등 8개 농축수산물에 대해 이달 초부터 관세를 아예 없애거나 TRQ 물량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치솟는 밥상 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여기서 TRQ란 일정 물량에 한해 저율 관세를 적용한 것을 말한다. 즉 물가가 높으니 수입 농축수산물에 관세 부담을 낮춰 날뛰는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의미다.
그중 돼지고기는 하반기 공급 물량 부족이 우려된다며 12월 말까지 최대 4만 5000t에 대해 할당 관세 0%가 적용될 예정이다. 이미 지난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할당 관세가 적용되고 있는데, 이로써 그 기간은 올해 말까지 연장되는 것이다.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생강의 경우 기존 377.3%보다 낮은 20%의 세율이 적용되는 시장 접근 물량을 1500t 증량하기로 했다.
기존 생강의 TRQ 물량은 1860t 규모였다. 물가를 잡기 위한 현 정부의 농축수산물 수입 정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쇠고기, 닭고기, 대파, 바나나, 망고, 마늘, 양파, 참깨 등등 다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품목을 국내로 대거 들여오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해에는 농축수산물 수입량이 1084만 3135t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농축어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경영비 상승으로 수익 감소를 넘어 적자까지 보는 마당에 수입 농산물로 인해 국산 농산물 가격이 주춤하니 화가 날 지경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물가를 잡는다며 농축수산물을 수입하는 일을 현 정부만 한 것은 아니다. 고물가인 와중에 무작정 국내산만을 고수한다면 서민의 고통만 가중시킬 수 있다. 수입산과 국내산을 적당히 버무려 공급하는 것이 소비자의 선택지는 늘리면서 경제적 부담은 줄일 수 있으니 ‘식량 수입’은 역대 정부가 다 하던 일이었다. 아울러 그래야만 국제 정치에 있어서도 이롭다. 사주지는 않으면서 제 것만 사달라는 심보는 어디에서도 통할 수 없다. 단지 이번만큼은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던 것이 문제다.
코로나 종식과 러·우 전쟁, 금리 인상 등의 이유로 물가 상승률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사 먹기에도, 만들어 먹기에도 소비자는 여간 부담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전기료, 각종 영농 자재값, 인건비 등등 경영비가 큰 폭으로 올라 농가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라고 이들 모두의 사정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둔다면 농가와 소비자 모두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을 터, 우선 물가를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라 여겨 농축수산물 수입량을 큰 폭으로 늘린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수입량이 역대 최고치를 찍은 건 모두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수입 카드를 너무 남발하고 있고 농가를 계속해서 뒷전에 두고 있다. 비싼 경영비를 감당하며 열심히 농산물을 길렀건만 툭하면 농산물을 수입해 국산 농산물의 가격을 꺾어 버린다. 수입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농부는 허망할 수밖에 없다.
농업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농부는 더 이상 농부일 수 없게 된다. 농부가 되려는 사람은 더더욱 줄어들 것이다.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의 정책은 십분 이해하지만 이를 위해 농부가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농부도 국민이며 나아가 농업을 지키는 데에 막중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농업을 지켜야 유사시에도 국민이 굶지 않을 수 있다. 굶지 않은 국민이 다시 힘을 내 무엇을 해도 할 수 있다. 정부에게 지금처럼 근시안적인 대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장기적인 대책을 세울 것을 바란다. 농부를 지키는 동시에 물가를 잡는 방법을 찾는 건 정부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전기료, 자재값, 세금 지원 등등 여러 방법으로 얼마든지 국산 농축수산물의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세금을 부디 적소에 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