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감귤이 일본산에서 국산으로 바뀌고 있다.

겨울을 사는 과일들

또다시 겨울이다. 12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접어드는 오늘은 낮 기온이 15도까지 올라가서 초봄 같기는 해도 겨울은 겨울이다. 시장에 깔린 딸기와 감귤을 보면 그렇다. 야외에 진열된 사과,  배를 봐도 겨울이다. 추위에 혹시나 얼까 랩을 씌어 두거나 바람 맞지 말라고 바람막이를 설치해 두었다. 모두 추운 겨울을 잘 살아 보겠다고 애쓰는 모습들이다. 땅에서 자란 모습 그대로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는 것들의 숙명이란 이런 것. 나는 그저 응원하며 이들의 평안을 바라기로 한다.

겨울의 과일 ‘감귤’

겨울 과일이라고 하면 딸기와 감귤이 양대 산맥으로 불리지만, 한창 추울 땐 감귤이 조금 더 인기가 좋지 않을까 싶다. 맛이라는 개인 차보다는 가격 때문이다. 12월 7일 기준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500g짜리 딸기 한 팩의 가격은 무려 1만 원이었다. 바로 옆에서 3kg짜리 감귤을 1만 원에 판매하는 것과 비교하면 딸기의 비싼 가격이 더욱 크게 와닿는다. 딸기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건 시설 재배로 길러져서다.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수확하는 딸기는 한창 추울 때 시설의 온도를 높여 생장시킨다. 추우면 추울수록 난방을 더 강하게 해야 하니 12월의 딸기 가격은 상상 이상이다. 다르게 말하면 딸기 가격이 저렴해지는 때는 추위가 누그러질 때다. 그날의 경매 상황, 품위, 재배 방식 등 여러 변수로 딸기 가격이 때론 감귤보다 저렴할 수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딸기가 감귤보다 저렴해지는 시기는 겨울이 숨을 죽였을 때다. 그전까지 딸기는 큰맘을 먹고 사야 한다. 이러나저러나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겨울이 춥든 따듯하든 딸기보다 감귤을 더 좋아한다. 유일하게 맛으로 좋아하는 과일이 감귤이다. 딸기, 사과, 자두, 단감 등등 온갖 과일에 애정을 갖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을 빚지는 사람으로서의 고마움이고, 위태로운 것들이 살겠다고 애쓰는 모습을 향한 연민이다. 그런 마음들에 더해 내가 맛이 좋아 사랑하는 과일은 감귤이 유일하다. 저렴한 가격과 맛, 색감 거기에 휴대성 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서너 알 정도 챙겨서 나가면 든든하다. 사무실에서 하나씩 까먹는 묘미가 있다. 얼마나 좋아하면, 사랑하는 감귤이 이왕이면 내 자식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이왕이면 우리의 품종이었으면 한다. 타국의 품종이 아닌 우리 품종으로 기른다는 건, 다시 말하면 우리 농업이 한층 더 견고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나라 감귤 시장의 일본 품종

겨울이면 우리가 흔히 까먹는 감귤을 <온주밀감> 또는 <온주감귤>이라고 부른다. 그 안에 대표적으로 <궁천조생>이 있고, 조생과에 속하는 품종이다. 통상적으로 극조생감귤인 <일남1호> <암기조생> <궁본조생> 등의 감귤이 늦가을에 먼저 출하되고 나면 이어서 조생감귤이 출하된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조생이 극조생보다 맛이 더 좋고, 시기적으로도 적절해 많은 농가가 조생귤을 기른다. 즉 제주 감귤의 절반 이상이 궁천조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 외 <흥진조생>도 많이 기르는 품종 중 하나인데, 궁천조생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원산지다.

종자의 원산지가 어디든 우리 땅에 심어져 우리 손에 길러지는 농산물이 어디 마냥 타국의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태생이 우리 땅에서 난 것이 아닐 뿐이지, 이것만 빼고 보면 우리 것이 아닐 이유가 없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으로 보면 이는 대단히 큰 위기다.

사실 감귤은 2010년 이전까지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의 품종 보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즉 육성권자에게 로얄티를 지불해야 할 의무가 없었기에 이제껏 농가에서는 감귤을 기르는 데에 드는 비용 외에는 추가적인 지출이 없었다. 그러던 게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감귤, 딸기 등 6개의 작물이 보호 대상에 공식적으로 포함됨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신품종 육성권자에게 마땅히 로얄티를 지불해야 하는 것. 사실상 당연한 일이다. 온갖 노력을 기울여 신품종을 만들어 냈을 개인 혹은 회사 나아가 그 나라에 합당한 비용을 내는 건 경제 논리를 떠나 도덕적으로 당연하다. 그러나 어디 윤리적인 것만 볼 수 있을까. 농가 입장에서는 당장 생산비 외에 로얄티라는 적지 않은 비용을 추가로 지출하게 생겼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더 큰 짐이 생긴 격. 다행인 건 개발된 지 25년이 넘은 품종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르는 외국산 감귤 품종 대다수의 육성년도는 25년이 훌쩍 넘어 로얄티 부담을 져야 하는 농가는 극소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기르는 품종을 언제까지고 기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는 이상 기후와 시장의 변화는 계속해서 새로운 품종을 요구한다. 지금 당장 비용 부담이 없다며 안심하고 넘기기에는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딸기를 본받아야 한다.

딸기를 따라 감귤도 자립을

딸기의 경우가 우리나라가 완전히 자립한 작물 중 하나다. 과거에는 장희, 육보 등 일본 품종의 딸기가 주를 이뤘으나 설향 딸기를 위시로 죽향, 매향, 금향 등 우리나라가 개발한 딸기가 일본 품종을 서서히 대체하면서, 이제는 우리나라 딸기 시장의 주류는 일본산이 아닌 국산이 되었다. 품종 획일화라는 부작용이 생기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육성 및 보급되고 있는 신품종들이 많으니, 농가가 적극적으로 도입만 한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국내 개발 품종의 성공적인 도입으로 로얄티 문제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에만 의미를 두자. 그리고 감귤도 그래야만 한다.

어느덧 UPOV의 공식 발표 뒤로 약 11년이 지났다. 2023년 현재 감귤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결론적으로 느리지만 분명하게 우리의 것으로 바뀌어 나가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하례조생>이 있다. 2004년에 개발된 하례조생은 노지에서 11월 중순부터 수확할 수 있는데, 2014년부터 재배 면적이 늘어 2022년 기준 567헥타르(ha)에서 재배되고 있다. 국내 육성 품종 가운데 가장 넓은 재배 면적이다. 하례조생은 궁천조생보다 당도는 1브릭스 높고 신맛은 20% 정도 낮다.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덜 달고 덜 신 품종이니, 재배 면적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겨울에 하례조생이라는 이름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그 이름이 앞으로 더 많이 발음될 것이다. 설향이 처음 그랬듯.

국산 감귤 <하례조생, 윈터프린스, 미래향, 탐나는 봉, 사라향>

하례조생 다음으로 재배 면적이 넓은 건 <윈터프린스>다. 온주밀감이 아닌 한라봉과 레드향 같은 만감류에 속하는 감귤로, 시설에서 12월 상순부터 수확이 가능하다. 기존 만감류보다 껍질 벗기기가 쉽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고, 식감이 부드럽고 향이 진하다는 평도 많다. 당도는 12.5~13.5브릭스, 산 함량은 1.0~1.2%다.

이 외에도 황금향을 개량한 <미래향> 그리고 설날 차례상을 겨냥하는 <탐나는 봉> <사라향> 등도 최근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탐나는 봉과 사라향은 <한라봉> <천혜향>과 비교해 당도는 1브릭스 높고, 수확기는 10일가량 빨라 이 둘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품종이다.

필요한 변화

이렇게 보니 기대했던 대로 감귤 시장도 딸기의 전철을 밟고 있다. 좋든 싫든 앞으로도 많은 작물이 우리의 것으로 바뀔 것이다. 그것도 점점 더 빠르게. 기성세대 농부들에게는 번거롭고 불안한 변화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한 품종을 기르면 그만큼 자신만의 노하우도 축적되는 법.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던 품종을 버리고 다른 작물로 바꿔야 한다는 건 사업으로 치면, 주력 사업을 느닷없이 다른 사업으로 바꾸는 것이다. 다시 노하우를 쌓고 품위를 끌어올리는 데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시간도 많지 않고.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우리 농업을 지키려면, 나아가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려면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때론 변해야만 지킬 수 있는 게 있다. 농업은 변화는 쪽일 것이다. 

전성배 작가

땅에 신세를 지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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