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시장은 사라져 가고, 나는 떠나고

명절의 상징은 전통 시장의 대목 장사

종종 낭만에 살고 죽어서, 이름 있는 날에는 꼭 그날의 상징적인 일을 한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화이트데이에는 사탕을 나누는 것이다. 로즈데이에는 장미를 나누고,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를 세운다. 명절도 다를 것 없다. 앞서 말한 날들이 설령 덜 낭만적이고, 덜 예민한 사람에게는 보통의 날과 다름없이 흘러간다 해도 명절만큼은 아직까지 전 국민 공통 기념일처럼 취급된다. 열에 여덟아홉이 반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명절에 가족들과 한데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반년 치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아주 많이 전통적인 어른들이 덜 전통적인 젊은 세대들과 함께 사는 한 당분간은 계속될 풍경이다. 그렇기에 낭만이고 뭐고 이때만큼은 내 낭만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러나 어찌 됐든 나는 낭만에 살고 죽는 몸. 생사를 오갈 정도로 낭만을 좋아하므로, 명절에는 급기야 내 멋대로 상징적인 일을 만들어 행하기에 이른다.

추석의 ‘추’가 ‘가을 추 秋’자를 쓴다는 점에서 가을에 나는 과일을 선물하거나 먹는 것으로, 추석의 낭만을 실현하는 것이다. 올해는 오랜만에 햇사과를 골랐고, 특별히 추가로 하나를 더 했다. 대목 장사로 부산한 시장에 몸을 던지는 일.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시장의 그것도 대목 장사를 보내는 시장의 풍경을 이번 추석에 보고자 했던 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꿈에서 끝나려는 작가

오랫동안 만나온 연인과 오랫동안 농담처럼 말하던 결혼을 진중히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글을 쓰는 내가 싫어졌다. 글에게 권태를 느낀 건 사실 오래됐다. 4년을 넘게 매달리고 있으나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에. 고작 책 몇 권과 종종 돈을 받고 썼던 글 수십 개, 돈 하나 벌지 못한 글 수백 개가 글을 쓰며 살아온 내가 남긴 전부다. 돈을 번 건 번 거고, 이 정도면 공연히 작가라 말할 정도는 되지 않냐고 누군가 내게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나도 같은 생각에 언젠간 더 나은 글과 더 많은 돈을 버는 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권태로워도 버티며 살았으니.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저 내가 운 좋게 현실에서 동떨어져 살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우 현실적이고 냉혹한 결혼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꿈이라는 하늘에서 순식간에 현실이라는 땅으로 떨어졌다. 몇 년 만에 밟은 땅 위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저기 보이는 나의 오랜 친구들의 땅 위에는 크고 작은 무언가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사실 연인과의 결혼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언젠간 알았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던 거라고.

서른이 훌쩍 넘은 뒤에야 깨닫고만 나는 글이 몹시 싫어졌다. 글이 싫어진 얘기를 글로 쓰고 있는 게 웃기지만, 곧 다른 것으로 먹고살게 된다 생각하니 덜 미워져서 쓰는 중이다. 나는 10월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직장에 들어간다. 마음 좋은 사장과 인사 담당자가 있는. 부족한 나를 여실히 드러냈으나 여전히 나를 믿어주는 어떤 회사로 출근한다. 아마 나는 당분간 회사 생활로 생계를 꾸려갈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시장에서의 시간은 더 멀어지고, 과일과 관련된 일은 조금 소홀해질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이의 신뢰를 얻는 일은 그야말로 천운인 데다 사랑하는 이도 있으므로 ‘당분간’은 결코 짧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나만 잘한다면, 잘리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느껴보고 싶었던 거다. 시장의 대목 장사. 그 분주하고 고생스러운 시간을.

오랜만에 찾은 시장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올해 추석을 예로, 9월 28일부터 9월 30일까지가 명절 연휴라고 하면 대목 장사의 피크는 25일부터고, 그때부터 28일까지 점진적으로 올라가다 정점을 찍는다. 과일과 정육, 수산, 건어물 등등 하여간 전통 시장의 상가 전체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을 상대하며 장사를 한다. 그리고는 28일 저녁 시간이 되면 그 많던 사람은 정말 썰물처럼 빠져나가 사라진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기 위해 음식 준비를 해야 하거나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해야 하거나 고향으로 떠나야 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29일부터 시장은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긴다. 그나마 선물용 과일과 고기를 구매해야 하는 사람들로 인해 과일 가게와 정육점 정도만 장사가 좀 되지만, 다른 곳은 문을 닫고 쉬어도 될 정도로 사람이 없다. 이번에 내가 시장에서 일을 한 날은 26일과 27일 이틀이었다. 피크라면 피크인 시간이다.

특이하게도 정육점에서 명절 알바를 뛰었다. 원래라면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과일 가게에서 하는 게 맞겠지만, 지인의 가게는 이미 알바생을 구했고, 다른 곳을 찾기에는 시간도 늦어 마땅한 곳이 없었다. 정육 쪽이 그나마 자리를 구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정육점 일을 조금이나마 경험한 적이 있어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일한 시장은 과거 내가 일하던 시장과 생김새나 분위기 면에서 사뭇 달랐다. 그때 일하던 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가 굉장히 넓었고, 대목 때는 그 넓은 곳이 사람으로 빼곡해졌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2014년 설날부터 2017년 연말까지 일하는 동안 변하지 않던 풍경이다. 그런데 이곳은 통로가 좁았고, 그럼에도 사람은 미어터지지 않았다. 분명 많기는 하나 사람이 산이나 바다를 이룰 정도는 아니었다. 명절 분위기가 난다고 말할 법은 해도 그때 그곳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것이다. 고객들의 나이대도 달라져 있었다. 그때 그 시장에 다니던 사람들보다 더 나이가 든 사람들이 이 시장의 주 고객층이었다. 이 정도로 차이가 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차이가 이토록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걸까. 단순히 지역적 특성 때문일까? 엄밀히 말하면 이곳도 같은 인천인데다 지역구로 따지면 규모가 가장 큰 시장이다. 주변에 주택가가 즐비해 있고, 제법 비싼 아파트도 많아 객단가도 높았다.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곳이 더 이점이 많아 보였다. 그렇다면 세월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고작 이틀 가지고 명절 분위기를 판단하는 게 속단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시장에서 명절 장사를 족히 열 번은 보냈다. 양적으로는 몰라도 질적으로 분명 차이가 있었다. 시장이 바뀌었다. 손님의 수는 확연히 줄고 나이는 더 들었다. 한편 젊은 손님은 더 찾기 어려워졌다. 부모를 따라 함께 오던 어리거나 젊은 청년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백종원의 예산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

연예인이자 기업가이자 요리 연구가인 백종원 씨는 최근 충남 예산에 있는 ‘예산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론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며 전국 지자체에서 백종원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자 백종원에게 적극적으로 접촉하는 중이다. 한편 시장의 부정적인 면도 여실히 드러났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다른 일부 상인들의 태도, 건물주의 권력 남용, 젠트리피케이션, 가격 올려치기 등등 “이래서 시장은 안된다.” “이딴 시장에 마음과 돈을 쓰는 백종원이 불쌍하다.” “시장은 망해야 한다.” 등의 말이 칭찬의 수만큼 매섭게 쏟아졌다.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전심을 다하는 상인과 시장을 망하게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한 치 앞만 보고 사는 상인들의 환장의 대립. 그 사이에 낀 시장의 이미지는 다시 바닥으로 추락하는 중이다. 지금이야 백종원 버프로 연명하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갈지.

시장이 망해가고 있다. 예산 시장은 어찌 됐든 운이 좋다. 시장과 농업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으면서도 능력과 영향력을 두루 겸비한 인물이 시장의 부흥과 이미지 쇄신을 위해 힘써 주었으니. 무지한 일부 인물들에 의해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듯 보이는 건 나도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느 시대고 어느 곳에서든 전체를 만드는 건 결국 소수의 몫이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결국 소수가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안타깝게도 언제나 부정적인 소수가 전체를 만드는 힘이 훨씬 더 셌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시장의 기능은 한계에 다다랐다. 모든 시장을 지키기엔 너무 낡았고, 고집스럽고, 인정을 표방하나 실은 야박하다. 시장은 더 이상 바뀔 수 없는 과거의 잔재인 듯하다. 시장이란 문화는 모르긴 몰라도 언젠간 사라질 곳은 다 사라지고, 일부 대형 시장 정도만이 명맥을 유지하는 전통으로 남을 것이다. 서울 종로의 광장 시장이나 충남 예산 시장이 그런 시장이 될 것이다.

시장을 떠나 보통의 직장인으로

나는 시장을 떠나고, 글과 과일에서는 멀어진 채 직장인이라는 보통의 삶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나는 사무직을 맡고, 회사의 매출 증진을 위해 판매 전략을 짜야 한다. 이를테면 콘텐츠 제작, 판매 채널 확대, 카피라이팅 같은 것으로. 때에 따라 상사에게 보고서도 올려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상품 기획도 하게 될 것이다. 나와 같은 일을 이미 하고 있거나 하게 될 사람들에 한해서는 나는 이제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가 변심하지 않고, 내가 부족해 잘리지만 않는다면 아마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늦게 밟은 땅 위에서 남들보다 늦게 무언갈 조금씩 세워가면서.

추석을 조금 더 낭만적으로 보내고 싶어 급하게 찾은 시장 장사가 어쩌다 보니 취업 전 마지막 인사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과거와 잘 헤어지기 위한 이별 여행 같은. 재회를 꿈꿔볼 수는 있으나 기약은 없는. 이번 추석 장사는 결국 시장과 이별하기 위한 나만의 상징적인 행위였다. 손님들도 떠나고 나도 떠나는 시장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약 없는 만남을 운명에 붙여 놓는 사이 시장은 점점 사라지고, 손님은 더 줄어갈 것이다.

전성배 작가

땅에 신세를 지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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