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사랑받는 우리 농산물

농업의 첨단화

세상의 변화가 새삼 경이롭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나 때론 이만큼 의미와 의도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농산물처럼 아날로그적이고, 발 빠른 시대와 다르게 정체된 분야가 또 있을까. 스마트팜이 어떻고, 첨단 농법이 어떻고, 획기적인 농자재 개발이 어떻고 간에 농산물은 여전히 땅과 사람, 날씨에 좌지우지된다. 셋 중 어느 것 하나 도와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결실을 보기 어렵다. 이 땅의 모든 농지가 시설로 뒤덮여 기계와 수경 등으로 기르지 않는 한, 인간만큼 움직이는 안드로이드가 등장하지 않는 한(그만한 안드로이드가 세상에 나올 즈음이면 사람은 애당초 알약만 먹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농사는 최후의 최후까지 아날로그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농업도 몇몇 분야에서는 과거에 비해 덜 아날로그적이거나 첨단적으로 변한 것도 있다. 유통은 첨단 쪽에 가깝다.

일례로 무화과와 딸기를 보자. 둘 다 살이 무르고, 금세 변질이 될 정도로 성미가 급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과거에는 그 때문에 산지에서 주로 소비가 되었다. 요즘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쉽지 않지만, 내가 한창 과일 장사를 하던 2010년대 중반만 해도 가게에 깔린 무화과를 보며 몇몇 어르신이 “아이고, 무화과를 여기서 다 보네”라고 말하곤 했다. 무른 무화과가 상처 하나 없이 저 먼 남부 지방에 서울과 인천으로 온 게 신기하셨던 것이다. 당신의 젊은 날에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으니까.

무화과는 어떻게 유통 되나

여담으로 보통 무른 과일은 약간 미성숙할 때 수확하여 유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성숙하면 그만큼 단단하기 때문에 운반 중에 발생하는 충격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어서다. 바나나, 망고 등이 대표적. 무화과도 그래서 미성숙할 때 수확하는데,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바나나, 망고 같은 과일은 미성숙한 상태로 수확하여 유통 과정 중에 익히더라도 그 당도가 올라가지만, 무화과는 나무에서 따는 순간 당도를 올리기 위한 숙성을 멈춘다. 수확 후에 색이 진해지며 살이 말랑해지는 걸 볼 수 있기는 한데 단지 그뿐, 당도가 올라가는 건 아니다. 오직 나무에 달렸을 때 제 스스로 맛있어지기 위한 숙성을 이어간다. 따라서 무화과는 최대한 익힐 수 있을 만큼 익히면서도 그나마 가장 단단할 때를 노려 날이 가장 선선한 시간에 수확해야 한다. 무화과 농사의 노하우라면 노하우인 부분이다. 한편 무화과를 직접 나무에서 따 먹던 시절을 산 사람들이 오늘날의 무화과를 먹으면 예전 그 맛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설명이 될 것이다. 무화과 나무를 옆에 두고 살지 않는 한 그 맛은 추억을 벗어날 수 없다.

딸기는 어떻게 유통 되나

다시 돌아와 딸기의 이야기로 마저 이어가면, 딸기에서는 조금 더 복잡한 발전을 본다. 살이 무른 딸기는 제철인 봄에 수확하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표피가 까지고 짓무르기 시작한다. 엄연히 봄에 태어나라고 만들어졌으나 봄을 온전히 살 수 없는 운명. 그런 딸기가 오래 살 수 있게 된 건 역시나 농업에서 첨단적이게 된 부분 덕분이다. 시설 재배와 겨울철 유통, 포장 방식이 그것이다. 시설 재배를 통해 한겨울에 딸기를 자라게 해 유통을 하니, 추운 날씨 덕분에 딸기의 품질 유지 기간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포장 방식도 개선하면서 운반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충격까지 완화, 저 먼 전남에서 자란 딸기라 해도 여전히 생글생글한 모습 그대로 서울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애초에 시설 재배로 전환된 시점부터는 땅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땅만 있다면 서울에서도 재배가 가능해졌다. 수도권에서 갓딴 딸기를 먹을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른 것이다. 지난겨울에 내가 만난 최재혁 농부는 인천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다. 과거에는 꿈도 못 꿀 일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이 변화는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이 땅이 그만큼 좁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도의 크기면 그리 큰 기술력도 노하우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이 우리 땅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도 여전히 생생한 모습으로 팔리고 있고, 나아가 사랑받고 있기까지 하다는 걸 알았을 땐, 이 변화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홍콩시장에서의 우리 농산물 입지

얼마 전 농민신문사에 올라온 기획 인터뷰에서 홍콩 시장의 한국 농식품 사랑을 보았다. 인터뷰 대상자인 홍콩 내 한국 농식품 유통 전문 매장 ‘신세계 마트’ 관계자가 말하길, 홍콩 시장에서는 현재 샤인머스캣과 고구마, 김치 등 다양한 종류의 한국산 농식품이 골고루 사랑받는 중이라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영화, 음악, 드라마, 예능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콘텐츠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 그게 농식품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꾸준히 사랑받는 것을 말미암아 품질이 받쳐 주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라고도 말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첨단적인 유통력 덕분에 해외에서도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고, 때마침 시기적절하게 한국의 문화가 전파되면서 한국 농식품이 날개를 단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홍콩 시장에서 한국 농식품의 소비층이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건 재미있는 부분이다. 한국 농식품은 현재 고급 식품이란 이미지가 두드러져 있어 중산층에게 더 많이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특징으로는 한국 고유의 패키지 디자인을 선호한다. 보통은 해외 시장에 자국의 상품을 판매할 때 포장지를 현지 언어로 바꾸는 게 일반적인데, 한국어를 그대로 사용한 패키지를 더 좋아한다고. 한국산이라는 게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니 소비자들이 가치를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끝으로 관계자는 일본의 농식품 위상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지만, 언젠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말뿐이 아닌 게, 과거 한국산보다 인식이 좋았던 대만 농식품의 위상을 이제는 한국산이 따라잡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문화가 계속해서 사랑받고, 그 관심을 기회로 삼는다면 언젠간 일본의 농식품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받은 사랑을 실망시키지 않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지속적인 상품 기획과 품종 개발, 품질 유지, 마케팅 등이 많은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걱정했던 농업의 전망은

해외 시장에서 우리 농산물을 전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니, 농산물 무작정 아날로그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땅과 사람, 날씨에 구애받는다는 절대적인 아날로그적 숙명 앞에 농산물은 실은 농부와 함께 그 외 부분을 첨단적으로 바꿔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게 새삼 대견하고 다행스럽다. 바뀔 수 없을 거라 단정하고 안주한다면, 농업은 자꾸만 나이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나이든 농업은 전진도 없고, 생기도 잃은 채 그저 볼멘소리만 넘쳐나게 되고, 그런 농업을 보는 사람들의 눈은 결코 고울 수 없다. 그런 농업에 미래를 걸 젊은이들 또한 없다. 바꿀 수 있는 부분은 과감히 바꿔 나가야 한다. 거기서 아날로그적인 부분을 버려야 한다면 버리고, 첨단적이어야 한다면 마땅히 연구하고 배우고 체화해야 한다. 기존 시장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키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는 일도 계속해야 할 테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농업은 이 모두를 해 나가고 있었다. 다행한 일이다.

전성배 작가

땅에 신세를 지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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