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게 끝없이 등장하는 오늘날
식당에서는 로봇이 서빙을 하고, 주문은 작은 기계가 받는다. 아주 첨단적인 식당을 만나면 입장부터 퇴장까지 점원 한 번 만나지 않고 이용할 수도 있다. 휴대폰은 웬만한 컴퓨터의 성능을 압도하고,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처음 들었던 AI는 실생활에 밀접해진 지 벌써 수년째다. AI는 지금 이용자의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 학교 과제, 회사의 업무 등 광범위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역할과 쓰임새를 갖출 것이다. 차량은 사람이 조작하지 않아도 움직이고, 휴대폰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앉은 자리에서 전 세계 웬만한 곳은 거리뷰로 다 볼 수 있다. 실시간으로 세계의 소식을 얻을 수 있는 건 인터넷이 등장한 수십 년 전부터 이미 가능했으니, 여기에서는 구태여 거론할 필요도 없을 테다.
팝 가수를 보며 과거에는 그저 선망하는 것에 그쳤던 우리나라 가요계는 이제 자리를 바꿔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자리에 섰다. 음악뿐만 아니라 식품, 의류, 모델 등등 다양한 분야가 계속해서 자리를 바꿔 나가는 중이다. 스타벅스가 국내에 상륙했던 초창기만 해도 밥 한 끼 값과 맞먹는 커피를 누가 마시겠냐며, 그럼에도 사 먹는 사람을 두고 소위 사치 혹은 있는 사람들의 허세라고 입을 모아 말하던 시절은 이제 모든 이가 커피를 마시는 시절로 넘어왔다. 보리차나 둥굴레차를 식수로 먹던 우리나라 식문화에 아메리카노가 잘 맞았던 걸까 조심히 짐작해 본다.
변함없는 전통
지금 이렇게 나열한 것 말고도 과거와 현재의 차이점은 무궁하게 많다. 과학과 문화, 경제 등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실시간으로 현재는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되는, 사실상 무한히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되는 세상에 사는 이상, 과거와 달라진 점을 세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건 정말 무한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존속되고 있는 것도 있다. 그 또한 생활 전반에 퍼져 있으나 대체로 형태는 없다. 기록과 의식, 문화에 힘을 빌려 어떤 것은 시대에 따라 아주 잠깐 물성을 얻을 뿐. 바로 ‘전통’의 이야기이다.
전통 중의 전통 ‘명절’ 그리고 ‘추석’
전통이란 이름은 여러 곳에 붙어 있다. 식품, 의상, 장소, 행사, 기념일 등등. 그중에서 기념일이라 하면 역시 명절만큼 전통성이 짙고 거대한 것도 없겠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기념일.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의 추석 秋夕은 개인적으로 설날보다 더 의미가 깊다. 이유는 아마도 시기에 있을 것이다. 설날은 새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가장 먼저 맞이하는 명절로 겨울에 존재한다. 너무 추운 나머지 작은 생들은 죽거나 잠이 들어서 생기가 씨가 마른 때이다. 아무리 마음을 가볍게 갖고 활기를 띄워도 엄숙함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추석은 어떠한가. 가을은 봄에 피어나 여름에 열심히 자라던 것들이 끝내 결실을 보이는 때이다. 이때 나오는 과일들은 저마다 이름은 달라도 ‘햇’자를 이름 앞에 붙인다. 당해에 처음 나오는. 그해가 처음부터 끝까지 키워낸 결실이라는 인증이다. 잉태보다 출산 때 조금 더 경사스럽듯 추석은 그야말로 잔치 기분이 난다. 무탈하게 잘 자라서 태어났다는 의미이니까. 출산을 마친 나무도 무탈하다는 의미이니까. 때마침 가을도 아직 완연하지 않은 덕분에 자연은 초록으로 풍성하다.
그래서 추석에는 더욱더 우리 농산물을 소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매년 설날에도 나는 이런 말을 하지만 추석에는 조금 더 소리를 높여 우리 농산물을 선물하자고 말한다. 재배와 저장 기술의 발전으로 겨울에도 햇과일 못지않은 품질의 과일이 지천에 널려 있기는 하다. 감귤류의 경우에는 애초에 겨울이 성출하 시기이니, 겨울에도 햇농산물을 선물하기 좋다고 말할 명분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어울리는 건 역시 추석일 것이다. 그 풍요로운 분위기에 어울리는 걸 고르라면, 농산물 말고는 방도가 없다.
추석에 우리 농산물을 선물해야 하는 이유
추석에는 우리 농산물을 선물하자. 다시 말하지만, 풍요와 결실의 계절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하기에 농산물만 한 게 없다. 농산물을 골라 선물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 인사에 더해 새로운 계절과 당신의 풍족한 나날을 염원한다는 마음까지 전할 수 있다.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올해 나는 사과를 선물해 볼 생각이다. 기후 변화가 예상보다 빨라 사과와 배 같은 온대성 작물의 재배 적지가 해가 다르게 북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주산지라고 불렸던 곳이 주산지가 아니게 되려고 하고 있다. 그 미래가 생각보다 더 빨리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과를 선물하려 한다. 아직은 주산지로 남아 있는 그곳의 사과를, 옛 맛이 아직 남아 있는 그곳의 사과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고, 가을을 알리고, 풍요를 알리고, 전통의 향수를 그들과 조금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 내년에는 배를 그다음 해에는 복숭아를 하면 좋겠다.
여기까지 추석에 농산물을 선물해야만 하는 내 나름의 이유였다. 한 치 앞만 겨우 보는 사람이라 설날을 발판 삼아 추석을 치켜 올렸는데, 내 글을 아는 독자라면 나를 잘 아는 친우라면 알 것이다. 겨울에는 추석을 발판 삼아 설날을 치켜 올릴 거란 걸.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기 바란다. 몹시 사랑하면 논리와 멀어진다.